우리 또래 남자들에게는 '문방구'에서 사다 만들던 플라모델에 대한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본드칠 덕지덕지 하면서(지문 찍히는건 덤이다) 만들던 탱크, 비행기. 겨우 구입한 에나멜을 붓에 찍어 정성껏(맞나?) 색칠을 하고는 떡져 울퉁불퉁하게 칠해진 것을 보고서는 망연자실 실망을 거듭했던 초등, 아니 국민학생 시절. 2000년 초중반부터 색을 칠할 필요가 없으면서 색재현은 뛰어나면서 접착제도 필요없이 끼워 맞춰 만드는 제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회사 어느 제품인지는 여기서 궂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문제는 언제인가 소리소문 없이 찾아오는 노안! 돋보기로는 속시원하게 뭘 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야 만다.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이곳, 두루본 광학을 뒤지다 발견한 것이 바로 이 루페다. 일단 사장님의 안목을 믿고 구매했다. 박스에 찍힌 키릴 문자가 신선하다. 제품은 그냥 투박하게 생겼다. 렌즈 프레임은 아마도 위에서 내려오는 빛의 악영향을 차단하려고 모자 챙 앞을 꺾어 앞에 렌즈를 단 것처럼 만들었고(몰랐는데, 일반 작업용 루페는 대부분 이렇게 생겼다.), 머리에 두르는 헤드밴드 부분과 렌즈프레임에 길이 연장용으로 부착돼 헤드밴드에 연결되는 부분은 얇은 금속판 재질이다. 머리띠 조절은 헤드밴드에 부착된 렌즈 프레임을 상하로 움직여 시선 각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핀 한쪽(한쪽만 빠진다)을 빼 헤드밴드의 다른 구멍에 끼워 헤드밴드의 둘레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한다(사진 참조).제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것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마더 로씨야(러시아)스러운 무식한 물량투입 및 수작업/실용주의 감성이다. 웬만한 서구권 제품은 이녀석처럼 이것저것 조립해서 만들지 않고 그냥 플라스틱으로 퉁 찍어낼 것이다. 그런데 이 제품은 힘 받는 부분은 죄다 금속재질(강철인지 스텐레스인지는 모르겠다)이다. 그리고 모든 접합부위는 나사로 조여놨다. 이건 금속재질 부품을 힘으로 휘어버리거나 플라스틱으로 된 렌즈 프레임(이놈도 두툼한 것이 뽀개기 힘들어보인다)을 일부러 부숴버리지 않는 한 그냥은 망가지기 어려운 구조다. 하긴, 소련 시절 원가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군용 방탄헬멧(일명 하이바) 성능 떨어진다고 통짜 티타늄(!)으로 양산해서 뿌린게 얘네다. 덤으로 미국은 이때 소련산 티타늄을 골프채 제작용도 명목으로 수입해서 SR-71 정찰기 만들어 소련 상공을 날아다녔다.두번째는 생각외의 광학성능이다. 딸랑 렌즈 한장으로 구성된 광학계(라고 해도 되나?)다. 코팅 따위는 없다. 다만 렌즈가 그냥 볼록렌즈가 아닌건 확실하다. 눈쪽이 최소한 평면(평볼록)이거나 아니면 조금 더 나아가 아주 살짝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볼록 메니스커스)인듯 싶다. 루페를 착용하고 바라본, 촛점이 맞은 상태의 상은 적어도 시야 범위에서는 해상도가 높고 수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놀랍다. 아래 루페로 확대한 상을 찍은 사진은 실제 성능에 못미치게 나온 사진이다. 직접 착용하고 촛점이 맞은 상태에서 눈에 느껴지는 확대상의 품질은 저 사진과는 확연히 다르다.작은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노안때문에 손감각으로만 조립하는 참사를 막고 싶다면 하나쯤 쟁여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플라모델 조립용으로 쓰기에는 과할지도 모르겠지만.